런던에서 같이 살고있는 두 여자
Ella: 4년 반동안 K-직장인으로 살다 더 늦으면 유학을 영원히 못 가겠다는 생각에 나이 서른되기 전에 직장을 때려치고 영국으로 석사 유학을 왔습니다. 석사를 끝낸 뒤 영국에서 직장을 잡아 외노자로써 돈을 벌며 토끼같은 룸메와 함께 살아가는 중입니다.
CK: 영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행 왔던 영국의 매력에 빠져 영국에서 석사를 했고, 이후 영국을 그리워하다 다시 박사과정으로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하면 끝도 없지만, 지금 영국에서 허락된 박사 기간을 마음껏 누리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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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두 가지 만남이 있었다. 하나는 전상사였던 앤드류와의 캐치업이었고, 하나는 친동생의 런던 방문이었다. 둘 다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 두 가지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앤드류를 만난 건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6월 들어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꽉 찬 상태였다. 결정을 내려주지 않고, 반응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일하고, 정리하고, 설득하고, 생색까지 내야 하는 날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만나면 뭔 얘기를 할지도 잘 몰랐다. 하소연이 될 것 같기도 했고, 뭔가 기운 빠진 모습을 보여줄 것 같기도 했다.
약 2달 만에 만난 앤드류는 훨씬 좋아 보였고, 언제나 그랬듯 그간 업데이트를 다정하게 하나하나 물어봐 줬다. 2달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업데이트할 게 정말 많았고, 내가 얘기할수록 앤드류가 뿌듯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 분야에 들어온 지 1년 반도 안 됐는데 너무 잘하고 있고,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 몰랐다고 했다.
헤어질 때 앤드류가 따뜻하게 안아줬는데 그 포옹에서 '고생한다. 그렇지만 너무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회사 안에서 점점 혼자 서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는 요즘, 회사 밖에 내 성장을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멘토가 있다는 게 꽤 큰 위안이 되었다.
동생과는 약 2주 동안 같이 지냈는데, 거창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같이 돌아다니고, 밥 먹고, 런던 이곳저곳 구경시켜 주고, 낮에는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저녁에 마주치는 그런 시간이었다. 중간에 동생이 아프기도 했고, 후반엔 런던에 갑자기 35도 폭염이 왔는데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둘이 녹아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시간이 좋았다. 동생이 돌아가던 날,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데 동생은 후련해 보였고, 아쉬움도 없어 보였지만 나만 괜히 섭섭했다.
동생이 와서 그냥 옆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별 말 안 해도, 대단한 계획이 없어도, 어딘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같이 지내면서 동생에 대해서 몰랐던 걸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인데 어른이 된 동생을 처음 만나는 기분 같은 게 있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동생 집에서 지내긴 했지만 런던에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또 달랐다. 각자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상을 살다가 잠깐 겹치는 시간. 그 겹치는 시간이 생각보다 나한테 필요했던 것 같다.
앤드류와의 한 시간, 동생과의 2주.
둘 다 내가 잘 해내고 있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확인한 시간이었다. 앤드류는 말과 포옹으로 전해줬고, 동생은 그냥 같이 있어 줌으로써 해줬다.
6월이 마감에 치여 스트레스로 헉헉댔던 만큼 이 두 만남이 더 크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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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공기
나에게 크리티컬하게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신앙생활, 일, 그리고 가족. 이 세 가지가 나의 삶을 이루는 근간이다. 물론 친구도 빠질 수 없지만, 돌이켜보면 친구들은 대개 이 세 영역 안에 자연스럽게 속해 있는 것 같다. 일에서 만난 친구,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친구, 오랜 시간을 함께해 거의 가족처럼 느껴지는 친구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세 가지로 귀결된다.
나는 언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의 행복은 이 세 가지가 온전히 균형을 이룰 때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일이 막혔을 때, 가족 중 누군가 아팠을 때, 신앙생활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거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나는 슬픔을 느꼈고, 어딘가 고장이 난 것처럼 삐걱거렸다. 그래서 나에겐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삶도, 가족과의 시간만을 택한 삶도, 교회 안에서만 살아가는 삶도, 그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거나 집중된 삶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행복은 이 세 가지의 적절한 조합, 그리고 그 안에서 integrity를 잃지 않는 것인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종종 일종의 identity crisis를 느끼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사실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느낀다. 내가 느끼는 혼란은 오히려 이 세 영역이 런던과 한국에 걸쳐 나뉘어 있을 때, 그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오묘한 경계에서, 나는 동시에 길을 잃기도 하고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 박사과정을 함께 시작한 대만 친구가 학업을 일찍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지도교수의 펠로우십 제안도 거절하고 가는 거라 의아해서 이유를 물으니, 그냥 대만이 너무 그립다고 했다. 가장 그리운 게 뭐냐고 묻자, 모든 것을 떠나서 그곳의 공기 자체가 그리웠다고 했다.
엄마와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취소됐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두 편의 비행기를 보내고, 다음 날 겨우 자리를 잡아 런던으로 돌아왔다. 빼곡했던 여행 일정 탓에 몸도 지쳐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집이 간절해졌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이 가벼웠고, 런던에 내렸을 때 들이마신 그 공기마저 좋았다. 그 대만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처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 영국이 왜 좋냐고 물으면 늘 설명하기 어려웠다. 물가는 비싸고, 날마다 비가 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왜 좋은지.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 소중한 일, 정착한 교회, 그리고 가족 같은 사람들이 런던에 많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런던은 어느새 내가 '돌아오는 곳’으로 생각하는 곳이 되었다. 나의 행복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찌 보면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는 런던이라는 곳에서 조용히 뿌리내리고 있고 런던은 나에게 여러 겹으로 점점 더 많은 의미를 더해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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