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스페인에서 엄마와 함께 여행한 뒤,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었다. 제목은 「철새」였다.
그리고 지난 6월 한국을 다녀오며 그 글이 다시 떠올랐다. 고향을 찾아가는 일, 엄마가 있는 곳을 방문하는 일이 철새의 귀소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8월에 휴가를 떠나지만, 나는 조금 이른 시기에 스페인과 한국을 다녀왔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마음도 분주한 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은 바쁜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해 떠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돌아와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잠시 떠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런던을 떠나면 내가 쌓아 온 일상에서 뒤처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반대로 한국을 떠날 때면 부모님을 두고 다시 멀리 간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편에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런던을 떠나는 것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한국을 떠나오는 일 역시 단순한 이별이나 도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결단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을 품은 채, 내가 사랑하는 곳을 다시 찾아가는 일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넌 어떤 삶을 살고 싶어?”
나는 외국에서 계속 살아가더라도, 한국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일 년에 두 번쯤 한국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스페인에서 썼던 「철새」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걷고 싶은 길인지도 모른다. 한곳에만 머무는 삶도, 어느 한 곳을 완전히 떠나는 삶도 아닌 것. 나의 삶이 있는 곳과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
한국은 내게 어떤 곳일까.
한국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아주 크고 중요한 곳이다. 물론 그곳에는 오랜 친구들과 추억, 익숙한 말과 음식,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풍경들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계신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은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된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둥지 안에서 살았다. 엄마는 나를 보호해 주었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었다. 하지만 나는 자랐고, 언젠가는 둥지 밖으로 날아가야 했다. 처음에는 낯선 바람이 두려웠지만, 조금씩 날개를 움직이며 더 멀리 날아갔다.
그렇다고 둥지를 떠난 새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철이 되면 철새가 먼 길을 돌아오듯, 나도 때가 되면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둥지 안에 들어가 보호받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스스로 날 수 있는 새가 되어, 내 두 날개로 그곳으로 돌아간다.
엄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도 다시 그 곁에 앉는다.
이제 나는 아기 새가 아니다. 둥지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엄마 곁에 머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떠날 때가 오면 나는 또 날아갈 것이다. 떠나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며, 돌아오는 것이 내가 선택한 삶을 포기한다는 뜻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철새는 떠나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철새
둥지 밖으로
아기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어머니의 둥지에서 어머니는 아기 새를 보호해 주었고 때가 되면 먹이를 물어다 주었다.
하지만 아기 새는 자랐다.
날개가 생겼고, 둥지 밖의 바람이 느껴졌다.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새는 날았다. 멀리, 더 멀리.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철이 되면 새는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새도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제 그 새는 아기 새가 아니었다.
둥지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