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연인 관계에 대한 글귀 하나가 유독 눈에 박혔던 날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언제든 그 연인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 관계가 건강하게 오래 지속된다."
'그럴거면 왜 연애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상대에게 매달리거나 안달복달하기보다, 나 자신으로서 온전할 때 비로소 둘의 관계도 단단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문득 나와 영국의 관계가 꼭 그 연인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난 영국에서의 시간동안 이 도시를 싫어했다. 입만 열면 "이 차가운 개ㅅㅋ의 도시"라고 욕을 했고,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는 곳이라며 툴툴거렸다.
그러나 내 행동은 말과 정반대였다. 어떻게든 이 낯선 땅에 두 발을 붙여보려 처절하게 발버둥 쳤으니까. 낯선 땅에서 집을 사보려고 기웃거렸고, 비자를 넘어 영주권을 받아보려 계산기를 두드렸으며,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여기서 찾아보려 애썼다. 물리적인 노력은 둘째치고, 정신적으로는 정말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건 나의 지독한 짝사랑이자 기나긴 '입덕부정기'였던 것 같다. 너무 간절히 원했기에 거절당할까 봐 미리 겁을 먹고, "난 너 별로야, 넌 너무 차가워"라며 먼저 밀어내는 척했던 방어기제.
나는 영국을 미워한 게 아니라,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질문을 잘못 던지고 있었다. 먼 옛날 내가 "나는 언제쯤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고 막막해했던 것처럼, 요 몇 년간 나는 스스로에게 습관처럼 물었다.
"나는 언제쯤 런던을 떠나게 될까?"
마치 내가 떠날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의 진짜 속뜻은
"나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였다. 그건 어쩌면 질문이 아니라 나의 두려움이었다.
사실 떠나는 건 언제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짐만 싸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남는 것'은 내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비자가, 회사가, 이 나라가 허락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나는 '언제 떠날까'를 고민한 게 아니라, '쫓겨나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변한 건 영국의 악명 높은 겨울을 대하는 태도였다. 원래 나는 영국의 겨울 앞에서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오후 3~4시면 해가 떨어지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 미저러블(Miserable)하고 긴긴 겨울을 도대체 제정신으로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사실 영국의 겨울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직후부터가 '찐'이다. 봄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3월까지도 여전히 우울하고 춥기 때문에 꽤 긴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예전엔 그 어둠이 나를 삼킬까 무서웠는데, 놀랍게도 나는 이 우울한 4번째 겨울을 너무나 잘 보내고 있다.
"오후 4시인데 벌써 어둡네? 해가 없으니 졸린가 보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어둠을 탓하기보다 비타민 D를 챙겨 먹으며 단순하게 생각한다. 재택근무 덕에 집에 콕 박혀 지내고, 헬스장도 같은 건물에 있는 덕을 톡톡히 본다. 창밖엔 비가 쏟아지는데 나는 뽀송한 상태로 있다 보니, 비가 오는지 마는지 체감도 못 하고 지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심지어 습기가 많아 뼛속까지 시리던 영국의 겨울 공기가, 한국의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이 건조한 겨울보다 촉촉해서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차가운 도시라고 욕할 땐 언제고, 이제 그 축축함마저 익숙해지다니.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 논의가 오가던 시점, 아주 약간의 불안함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영국의 겨울을 받아들인 것처럼, 재계약의 결과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재계약 안 되면? 난 뒤도 안 돌아보고 한국으로 갈 거야. 떠나는 건 내 선택이고, 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됐어. 난 여기서 할 만큼 했으니까.'
그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마음은 가벼웠다. "제발 나를 좀 봐줘"라고 질척거리던 짝사랑을 끝내고, "아님 말고"라는 주도권을 내가 쥐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계약은 연장되었다. 소식을 전해주는 매니저는 나보다 더 신나 보였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꽤 덤덤했다. 신난 매니저 얼굴을 보면서 "Happy to hear that"이라고 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버티는 것'을 포기하고 '떠나도 괜찮다'고 마음먹자 영국은 나에게 조금 더 머물러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내가 언제 떠날지 눈치를 볼 땐 곁을 안 주더니, 내가 짐을 싸려 하니 붙잡는 꼴이라니. 역시 관계의 역설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마침 이번 달, 이곳에서 동고동락했던 언니들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타지살이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로 깊이 공감했고, 그저 '언니'라는 존재만으로도 참 많이 의지했던 사람들이다. 떠나는 언니들을 보며 나는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데, 정작 짐을 싸서 나가는 언니들의 뒷모습은 어쩐지 아주 후련해 보였다.
나는 아직 이곳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어 여기에서의 삶을 조금 더 연장했지만, 언젠가 내가 영국을 떠나게 되는 '그날'이 온다면 나 또한 저런 모습이길 바란다. 최선을 다했기에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후회 없는 이별. 떠남 앞에 후회와 미련 대신, 새로운 챕터를 앞둔 기대와 설렘만이 가득하길.
한 언니가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마주 앉아 지난 시간을 복기했다.
"우리가 도대체 이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깨달았다. 우리에겐 각자 이 척박한 도시에서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준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에게는 그게 룸메이트들이었다. 춥고 어두웠던 그 긴 시간들을 건너올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내 곁을 지켜준 그들 덕분이었다.
사실 이 땅에 살기 위해서는 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버티기 위해서는 조건보다는 어떠한 '존재'가 더욱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나는 이 도시와 조금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지독했던 입덕부정기는 끝났다. 이제는 집착과 불안이 아닌,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지금은 서로가 좋아서' 함께하는 관계로.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라는 수동적인 질문은 이제 그만하려 한다. 대신 나는 하루하루 런던의 잿빛 하늘을, 그 촉촉한 공기를 즐길 것이다. 이별을 각오했기에 다시 시작된 런던살이. 이번 챕터는 지난 챕터보다 훨씬 덜 춥고, 덜 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