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 자리를 잘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타고난 복이 하나쯤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먹을 복이 있고, 누군가는 인복이, 누군가는 일복이 있다.
나는 확실히 집복? 주거운이 있는 편이다. 꽤 힘들었던 두 번의 이사를 끝낸 뒤 (내 집도 아니지만서도) 집의 안정감을 느끼며 내가 머물렀던 곳들에 대해 돌아본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기숙사에서 살던 때부터 그랬다. 경남 창원에서 올라와 2인실 기숙사에서 2년을 살았고, 3학년 때는 닭장처럼 생긴 2층 침대 세 개가 들어간 방에서 또 1년을 보냈다. 불편했지만, 어려서 그랬을까 살만했다. 4학년 때는 독일 교환학생으로 반년 동안 학교 스튜디오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때가 집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살아본’ 시기였다. 혼자의 시간을 버티는 법, 그리고 스스로의 생활 리듬을 만드는 법을 그 작은 방에서 배웠다. 인턴을 하던 시절엔 연구소에서 제공한 3베드룸을 다른 인턴들과 나눠 썼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늘 들리던 집이었지만, 그만큼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학교 근처의 5~6평짜리 원룸에서 1년을 살았다. 이후엔 수원역 초역세권 오피스텔로 옮겨 2년을 살았다. 서울로 이직한 뒤에는 성북동의 작은 1.5룸 빌라로 옮겼다. 전기포트 하나, 작은 커튼 하나까지 내 손으로 고른 공간이라 처음으로 “이건 내 집이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내 집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전세로 구한 곳이라 전세 이자만 내며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으로 요즘 흔한 전세 사기도 피했다. 그곳에서 ‘집을 꾸민다’는 즐거움을 처음 알았다. 집에서 해먹는 요리의 맛과 재미를 알았다. 식탁 위에 조명을 올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커튼 색을 바꾸는 일. 그 사소한 변화들이 삶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줬다.
돌아보면, 나는 이상하게도 늘 ‘그 순간에 살 만한 집’을 쉽게 구했다. 계약 시기가 촉박해도, 예산이 빠듯해도 결국엔 나에게 맞는 집이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이런 확신이 생겼다.
“내가 설마 길바닥에서 자겠어?”
어떻게든 살 집은 생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건 단순한 운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나를 가장 잘 아는 감각이자 내 삶에 진폭이 큰 진동이 생길 때도 날 붙잡아주는 힘이었다.
영국으로 온 뒤에는 부엌을 함께 쓰는 엔스위트 기숙사에서 1년, 그다음엔 친구 둘과 3베드룸에서 2년을 함께 살았다. 조금만 힘을 빼면 쉽게 외로워지는 차가운 도시, 런던에서 석사를 하며 만난 제니와 내 고등학교 동창 서로 알게된지 이제 10년도 훌쩍넘은 채린이와 복닥복닥 재밌고도 즐겁게 2년을 함께 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제니가 떠나고 채린이와 둘이서 새 집으로 이사했다.
좋은 집은 공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함께 사는 사람들도 내 주거 운의 일부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괜찮은 사람들과 살았다. 기숙사 시절엔 밤새 수다를 떨던 룸메이트가 있었고, 인턴 때는 늦은 밤 함께 라면을 끓이던 동료들이 있었다.지금은 채린이와 함께 하루의 시작과 끝을 공유한다. 서로 재택 중이라 하루종일 부엌 불이 꺼질 새가 없지만, 그 일상의 소음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킨다.
아마 내가 ‘집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좋은 공간과 더불어 좋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이번 집은 기존 월세보다 40~50파운드 정도 비싸지만, 25평을 세 명이 나누던 시절에 비하면 27평을 둘이 쓰게 된 지금의 삶은 훨씬 여유롭다. 공간이 조금 넓어진 것뿐인데, 하루가 훨씬 길고 조용하게 느껴진다.
이 집에 살면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대사가 자주 떠오른다.
“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져. 웬만한 일은 집에 오면 다 극복이 되니까.”
그 말이 이제야 실감 난다. 우리 둘 다 재택을 주로 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라 예전부터 “집에 투자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의 집은 그 대화의 결과이자, 운이 따라준 선택이다. 집 퀄리티에 비해 합리적인 월세, 창 밖으로 보이는 조용한 뷰까지. 이곳에서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작은 일에도 덜 흔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돌아보면, 모든 집은 그 시절의 나를 닮아 있었다. 불안했던 시절엔 좁은 방이었고, 조금씩 단단해질수록 방과 창이 넓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좋은 집을 찾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집’을 찾게 된다. 아마 그게, 내가 타고난 집복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아직 진짜 ‘내 집’은 없지만, 그 집도 언젠가 꼭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오겠지. 언젠가부터 정착하고 싶고, 안정감을 찾는 나에게 이걸 깨닫는 일은 큰 위안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