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겨울의 초입, 나의 작은 존버 전략
최근 이사 문제와 갑자기 추워진 날씨까지 겹치면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졌다. 원래부터 나는 추위에 약한 편이라, 날씨가 쌀쌀해지면 괜히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자꾸 나 자신을 탓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회사에서도 일이 거의 없는 날이 며칠 이어졌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만 보다 하루가 끝나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 무기력한 시기와 외로움이 겹치면서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은 거의 혼자 산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잠깐이지만 갑자기 혼자 살게 되니 그 공허함이 생각보다 컸다. 하우스메이트들과 콜을 해보니 그들도 혼자 사는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더라. 이사를 한 후 첫 주에는 튜브 파업까지 겹쳐서 꼼짝없이 집에만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이런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몰아치니, ‘이 회사에 과연 미래가 있나?’라는 생각에 링크드인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CV는 업데이트했다.
다행히 주말에는 일부러 센트럴에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가 조금씩 채워졌다. 특히 지난주에 캠브리지에 다녀온 게 나에게는 작은 전환점이었다. 캠브릿지에서 Cambridge BioSolutions이라는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송정숙님이 초대해주셔서,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캠브리지에 다녀왔다. 맛있는 것도 먹고, 캠브리지 거리를 걷고, 실질적인 조언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실제 경험담과 함께 들어보니, 무게감이 확 달랐다. 마치 꺼져가던 내 마음의 불씨에 다시 의욕이 붙는 느낌이었다.
정숙님이 해주셨던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런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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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n개월 만에 한두 번 말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최소 10번은 말해야 회사가 반응한다.
- 회사는 먼저 요청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 회사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와 의견을 어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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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큰 성과, 실패하더라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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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가든, 영국에 남든 간에 지금의 경험은 다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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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회사에서 부품처럼 있는 것보다, 현재 회사에서 직접 해볼 수 있는 것과 배울 것이 더 많다. 아직 1년도 안 되었으니, 이직을 고민하기보다는 불만족이 있더라도 존버하면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우는 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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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회사 생활을 이끌어가야 더 즐겁게 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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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략팀에 속해 있으니 유리한 포지션을 활용하라.
이 조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바로 반응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는 편이다. 최근 회사 재정 상황도 불안하게 느껴져서 더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 (정리해고의 기억도 한몫 했겠지…)
또 엄마와 통화할 때 들었던 말도 생각난다. 한국에 있었다면 일이 없다고 해도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버텨야 했겠지만, 지금은 재택이라 침대에 누워 있을 수도 있으니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일이 없는 시간엔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내 전략을 위한 시간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주엔 세일즈팀과 미팅이 있었는데,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괜히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매니저와 캐치업 미팅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세일즈 쪽은 아직 많이 모르겠으니, 배울 기회를 줄 수 있냐”고. 매니저는 “어떤 방식으로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고, 나는 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직접 Vet Clinic을 만나서 서베이 해보는 것, 세일즈팀이 컨퍼런스 부스에 갈 때 같이 가서 도우며 네트워킹을 해보는 것. 매니저도 좋은 생각이라며, 다음 달부터 바로 시작해보자고 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내가 소극적으로 회사 생활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로 큰 성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회사에서 나를 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동물약 관련 컨퍼런스나 이벤트에 꼭 참석해보려고 꾸준히 찾아보고 있다. Eventbrite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Veterinary Health Innovation Engine Annual Seminar를 발견하고, 매니저에게 꼭 가고 싶다고 했더니 매니저도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날 회사 워크샵이 잡혀서 못 가게 됐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나에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날 이후로 매니저도 괜찮은 컨퍼런스 이벤트가 있으면 나에게 공유해준다.
그리고 요즘 자기 전에는, 내년 내가 회사에 제안하고 직접 발표할 전략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런 과정이 언젠가 내가 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될 때도 분명 자산이 될 거라 믿는다. 몇 년간 돈을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이제는 당장 눈앞의 돈에 연연하지 않고,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우고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내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연봉도 오르고, 승진의 기회도 오지 않을까? 그때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만의 작은 존버 전략을 실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