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앞두며
이번 한 달은 나에게 조금 버거운 시간이었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그때그때 어려움이 있지만, 힘든 순간은 내 몸이 아플 때이고, 그보다 더 힘든 순간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아프실 때인 것 같다. 내가 부모님 곁에 있다고 해도 크게 해드릴 수 있는 건 없겠지만, 당장 달려갈 수 없다는 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석사 시절, 코로나가 닥쳐왔다. 당시 한국은 영국보다 상황이 심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도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영국이 잠잠해지고 한국에서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되던 시기에는 부모님이 기침이라도 하시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최근 아버지께서 큰 수술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여러 단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고, 엉엉 울다가,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의 삶을 반추해 보기도 했다.
석사 진학 전에 사귀고 있던 전 남자친구에게 영국에서 석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네덜란드도 한국도 아닌 영국에서 석사를 하고, 이후 영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나를 이기적이라고 했다. 그 말이 한쪽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나니, 왜 그 말이 다시 떠오르며 나의 마음을 후벼팠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이런 날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길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가는 것이 마치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한국은 집 안팎으로 힘든 상황이었고, 정치 상황도 난리도 아니어서 한국이라는 나라도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 랩실에서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그만두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이번 12월은 평소보다 더 작은, 조금은 방전된 배터리로 생활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안정이 나에게도 안정감과 든든함을 주었던 것 같다. 분명 앉아서 일을 했는데도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컴퓨터에는 인터넷 창 세 개에 탭이 25개나 열려 있었다. 그냥 일상을 살았다. 약속이 있으면 친구도 만나고, 회의에 참석하고, 학교 행사도 원래 약속했던 건 참석했다. 무슨 연말에 그렇게 학교 크리스마스 소셜이 많은지… 집을 나서기 전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지만 (나는 집순이라 집 밖을 나가는 것이 힘들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을 이어가니 끝없이 슬픔 속으로 빠져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이 조금 느리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정말 못하겠을 때는 솔직히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이고, 또 새해다.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이고, 새해니까.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