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라는 관계에 대하여
지난 월간레터 9월호의 제목은 '커리어와 외로움 그 사이'였다. 그런데 '커리어'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외로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이번 호에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럼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외로움'은 "홀로 있는 것같이 쓸쓸한 감정"을 뜻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요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못 느끼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영국에 와서 석사를 하는 1년동안 미친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손에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이 형태 없는 감정 때문에 별별짓을 다 했던 것 같다. 한 때는 내가 다시 취업을 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사라질까 착각하기도 했고, 짝이 있으면 사라질까 싶어서 열심히 데이트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는 외로움을 없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현재 가족같은 룸메이트들이 생기고, 영국에서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형용할 수 없던 그 '감정'에 대해 생각하거나 느끼지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석사 졸업식을 하면서, 2주간 휴가를 냈다. 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님이 런던에 오셔서 런던과 함께 파리를 여행했다. 2016년, 독일에 1년간 살 때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파리에 갈 수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 해에만 파리에 10번도 넘게 갔었다. 약 8년이 지난 후, 방문한 파리는 내 기억 속 내가 사랑했던 파 그대로였고, 나름 가까이 살면서 왜 이제야 파리를 재방문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만, 이번 파리 방문을 통해 사람은 안 변한다고도 하지만 참 잘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8년 전의 난 참 로망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에펠탑 같이 보기'였다. 그런데 이번 파리 방문에서 내가 한 일은 바로 룸메들에게 "내년 이스터 홀리데이 때 같이 파리에 오자!"고 메세지를 남기는 것이었다. 이런 순간을 겪고 나니, 난 아마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내 '룸메이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왔을 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 나는 사람.
사실 런던이라는 비싼 도시에 살면 혼자 살고 싶어도 감당하기 힘든 렌트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룸메이트'를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석사를 하면서 베스트 프렌드를 만났고, 내가 석사를 끝내고 룸메이트를 구하는 중에 고등학교 동창이 런던으로 박사를 하러 오게 되면서 3명이서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친구'로써 잘 지내는 것과 한 지붕아래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나도 다른 룸메이트인 '제니'의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겠지만 나의 룸메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상태인데 같이 살기 전까지 얼마나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겠는가. 하지만 결국 우리 셋은 같이 살게 되었고, 이번 달을 기점으로 1년간 계약연장으로 함께 더 살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우리가 1년간 얼마나 잘 살았는지 잘 나타내 주는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런던에서는 혼자 살 수 있는 재정상태가 되어도 룸메들과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룸메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른다 ㅎㅎㅎ) 즉, 나는 지금 '어쩔 수 없이' 룸메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룸메들은 이제 내 '런던 가족'과도 다름 없다는 뜻이다.
런던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런던이 나의 '집'처럼 느껴진다. 나의 직장이 여기에 있다는 것도 크겠지만 이제는 '룸메이트'를 넘어 '가족'처럼 느껴지는 친구들이 여기에 있다는 게 그렇게 느끼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게 내가 '외로움'을 못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이런 존재들을 만난다는 것을 정말 '복 받았다' 또는 '행운이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데 그 사실에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