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을 가게 된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자면,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나에게는 어떻게 보면 도피성 유학에 가까웠다. 나는 한국에서 미술 입시를 준비하며 정형화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고, 전공도 내가 원하는 전공의 미대 입시를 준비하지 않았던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한국의 입시제도에 대해서 현실 자각 시간을 직격타로 거하게 맞아버렸다. 한국에 살기 싫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쭉 생각해 왔었다. 재수하던 와중에 무기력증이 도져 버렸고.. 나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일본 미술 유학을 준비 후 일본으로 넘어가 버렸다. (현재까지도, 부모님의 지지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일본에서 생활했던 5년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 가고 나서 1년간은 어학 공부에만 집중하면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또한, 한국과 거리도 가까워서 (비행기로 약 1시간~1시간 30분) 주말에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우스갯소리로 나온 단어 중에서, 해외살이 허니문 기간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 온다. 일본을 향한 나의 허니문 기간은 약 1년 정도 지속되었고, 일본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슬럼프 또한 늘어났다. 일본 미술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는 슬럼프가 가속화됐다.
1년의 허니문 기간이 끝난 후, 해외 생활과 한국 생활을 비교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뭘 하러 일본에 온 것인가? 라는 질문을 종종 나에게 던지고는 했다. 더군다나, 유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일본 사회에 섞이지 못한 나에게, 일본 유학은 수월하지 않았다. 의문형으로 교수들에게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나는 ‘고분고분한’ 일본인 학생들과 비교 대상이 되어서 교수들 눈에 밉보이고 말았고.. 몇몇 교수들은 나에게 ‘말 안 듣는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나는 그저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두더지마냥.. 일본인 학생들과 부대끼는 것조차 힘들었다. 일본의 대학교에는 대학교 4학년에 취업 활동이라는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1년 정도의 기한이 주어진다. 나는 취업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3학년 후반쯤, 일본 내 취업과 유학을 고민하던 와중 모 교수의 눈엣가시였던 나에게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D 교수가 나를 붙잡고 “젤리라 상은 말야.. 취업 준비는 안하나..? 나는 젤리 상이 취업은 안(못) 할 것 같은데 유학 고민을 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말야.. 그게 과연 쉽게 진행될 수가 있을까나..?” 라는 교토식 화법을 나에게 시전 해 버렸다. 이 와중에 나는 이 말을 듣고 오기가 생겨, ‘두고 보자 D 교수야. 1년 뒤에는 누구 말이 맞았는지 내가 꼭 증명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오직 해외 석사 준비에 몰두했다. 2020년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즈음.. 나는 다시 한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해외 석사 준비를 시작하려 하는데 코로나가 터져버렸고.. 대학교는 무기한으로 닫아버렸으며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일본에 갇혀버렸다.
잠시, 일본에서 국경을 열었을 때 나는 재빠르게 가족들과 그래도 함께 지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도주해 버렸고,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을 병행하며 석사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본가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병행하며, 독학으로 유학 준비를 동시에 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유럽에 미술 유학을 간 사람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맨땅에 헤딩하듯 대학원 입시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의 유학 준비와는 결이 사뭇 다른 유럽의 유학 준비는 나에게도 처음인지라, 네이버와 유학, 영어 공부 카페를 뒤져가며 유학 미술에 대한 자료를 끌어모았다. 주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왔었던 유럽 친구들에게까지 물어봐 가며 사전 조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