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5년 전의 내가 써 놓은 '나의 온도'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사람마다 각자의 온도가 있다면 내 온도는 꽤 높은 편인 것 같다고, 그때의 나는 그 온도를 조금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글의 마지막쯤에서 나는 오래 살아가려면 내 온도를 조금 조절해야겠다고 썼다.
그 후 5년 동안 내 인생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거주지를 한국에서 영국으로 옮겼고(22년), 석사 학위를 땄으며(23년), 직무를 바꿨고(24년), 도메인도 약간 바꿨다(25년). 올해에서야 방향성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니, 지난 5년은 내 인생의 대대대대전환기였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나는 테세우스의 배처럼 삶의 큰 판자를 하나씩 갈아 끼웠다. 사는 나라가 바뀌었고, 학력이 바뀌었고, 하는 일이 바뀌었고, 몸담은 산업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이 많은 것이 바뀐 뒤에도 나는 여전히 5년 전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그런데 '나의 온도'를 다시 읽어 보니 이상할 만큼 지금의 내가 있었다. 어쩌면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내가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좋아하고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5년 후 나의 온도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내 온도는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무언가를 좋아하면 깊게 파고, 궁금한 게 생기면 찾아보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실제로 해본다. 심지어 이제 그걸 업으로 하고 있다. 좋아하는 걸 절대 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덕업일치에 성공했다. 그래서 어쩌면 5년 전보다 더 뜨거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바꿔야 했던 건 온도가 아니라 온도를 쓰는 방법이었다는 걸.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즐긴다'와 '잘한다' 사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잘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귀한 것은, 어떤 대상을 미친 듯이 좋아할 수 있는 마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살아보니 그렇게 마음을 쏟아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꽤 귀한 일이었다. 궁금해서 계속 찾아보고 싶고, 시간이 지나도 또 보고 싶고, 새로운 것이 나오면 괜히 설레고, 몇 년이 지나도 그 세계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마음. 나는 이 마음을 오래오래 가지고 살고 싶다. 만약 좋아하는 마음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한 번에 몽땅 써버리고 불타 없어지고 싶지는 않다. 아껴 쓰고, 잘 돌보고, 오래 가지고 가고 싶다.
그래서 어쩌면 지난 5년 동안 내가 배운 것은 불을 줄이는 법이 아니었다. 어디에 불을 붙일지, 어디에서는 불을 끌지, 그리고 어떤 불은 오래도록 작게 살려 둘지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